[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새로운 ‘여행의 시대’(3)
“여행은 우릴 떠난 게 아니라 진화하는 중”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자치단체는 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저마다의 다양한 전략을 내세웠다. 그중 가장 강력한 도구로 여겨졌던 것이 관광산업 분야였다. 그 이전의 대한민국 관광을 이끌었던 곳은 서울과 제주와 경주, 설악 지역에 집중되었다면, 그런 시장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산업화와 도시 집중화, 여가시간의 증대, 소득의 증가, 자기 발견과 휴식의 욕구를 위한 여행 선호 등 여러 요인이 겹쳐졌지만, 결과적으로 여행의 시장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부산의 경우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 비엔날레라는 대규모 문화행사 말고도 산복도로라는 특유의 입지적 조건을 관광매력으로 부상하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운대와 태종대라는 자연자원에 의탁하던 기존의 상차림이 더욱 풍성하게 차릴 수 있는 계기로 전환한 것이다. 그 속내를 잘 보면 시민의 자기 주도성이 훨씬 더 도드라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한동안 감천벽화마을 같은 경우가 각광을 받았지만, 방문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벽화를 보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은 방문지의 주민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매력물이 있는 곳에는 파생상품이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인데, 그 지점에는 뒷심이 부족했다.
매력물+파생상품 존재해야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통영의 동피랑 마을이 더 의미 있는 벽화 마을로 부상되었다. 지자체가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밀어내려 할 때 지역의 사회단체에서 더 나은 방법으로 제시하고 실천한 것이 벽화 마을의 조성이었다. 그 조성 전반에는 주민의 이야기가 발굴되었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대응 방안이 함께 논의되었던 것이다.
예쁜 경관으로서만 벽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무니를 담은 이야기들이 말을 걸어오고, 공감하면서 이분들에게 응원할 수 있는 방식이 마련된 동피랑은 다른 모든 벽화마을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 관계자들은 그 깊은 속내는 모르고, 그냥 통영의 바다와 어우러진 예쁜 경관만 챙겼던 것이다.
하여튼 감천마을의 벽화는 마을 전체가 캔버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크게 깨닫게 해 주었지만, 주민의 삶의 질과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사례였다.
반면 산복도로 투어와 같은 경우는 젊은 시민의 투지와 열정으로 만들어진 경우였다. 그곳에 왜 마을이 들어섰는지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삶, 그리고 미래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담아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 투어는 우리가 알았던 부산이 그간 너무 껍데기만 알았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한 여행이었다.
마을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마을 분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말씀을 경청하며 눈높이를 맞추고 응원해주는 여행이 그 굽이진 산비탈, 다랑이논처럼 계단을 이루는 집과 골목 사이에서 이뤄진 것이다.
‘산복도로 투어’로 가능한 부산 탐구
외국의 유명한 마을들을 카피해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 보다, 피난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편을 감수하며 마을을 일구고, 가족을 부양하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삶에 주목하는 산복도로 여행은 또 다른 방식의 부산을 탐구하는 방법을 일러준 여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이뤄진 것처럼 지역을 다시 재해석하고 드러내는 여행은 곳곳에서 이뤄졌다.
경북의 울진군은 성류굴과 불영사, 백암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는 조선 시대부터 금표를 치고 금강송을 키웠던 소광리 소나무숲이 있다. 500살이 넘은 소나무들이 울울하게 들어선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마을에 양성된 해설사분들과 함께 가야 하고, 마을에서 준비한 식사를 해야 한다. 워낙에 귀한 숲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켜왔던 분들에게 감사하고 더 탄탄하게 지켜나갈 수 있도록 서로 돕는 방식의 여행을 울진 금강소나무숲에서는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대만의 옥산을 오를 때, 1명에서 10명당 한 분의 고산 가이드와 등반함으로써 산림을 보호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며, 고산 가이드에게 수익이 되는 방식으로 갔던 기억이 연상되는 탐방을 숲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거슬러 보면 이런 여행은 보호받아야 할 생태가 있는 곳이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매력물이 있는 곳. 이를테면 경남 창녕의 우포늪과 같은 생태관광지에서 시행했지만, 점차 일반 대중들의 여행에서도 적용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품의 내면에는 주마간산으로 훑고 가며 소비해 버리는 여행으로부터 보다 깊이 있는 여행을 하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럼으로서 매력물을 지키고 가꿔온 현지인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가지며, 주민들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고, 한편으로는 주민들의 직접적인 수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며, 이는 매력물이 항구적으로 보존될 수 있는 체계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현지인 희생을 당연시 해온 관광 정책
그간의 관광 분야는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포장으로 현지인의 희생이 당연한 수순처럼 진행해온 것이 태반이었다.
과거 여행업에 종사할 때 괌으로 손님을 모셨던 기억이 선연하다. 20여 명의 일본인들을 공항에서 만났는데, 계속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JAL기를 타고 입국하여 닛코호텔에서 숙박하고 도요타를 타고 여행하고, 하쿠보탄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괌에서 이들이 소비하는 것은 관광지의 입장료 말고는 모두가 본국으로 다시 송금되는 일정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무역수지 흑자로 활황기였던 시절이라 서방세계의 눈치를 보며 실시한 국외 관광에서의 적자를 통한 소비촉진 정책인 10Million 여행 장려가 지속되는 상황이었지만 명분뿐인 정책이란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미 일본의 자본은 국제적인 명소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형태의 여행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운용되는 여행이 관광현장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참 질문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국내에서도 이런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제주에서 경주에서 여행을 하고 소비를 한다고 해도 많은 부분은 다시 서울의 자본으로 유입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물론 방문객이 많으면 이에 따른 파생 효과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이 여행 중에 들르는 편의점이나 카페나 맛집 등이 현지 자본이어서 지역경제의 순환 구조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요인이 있다.
하지만 좀 더 지역과 상생하는 여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자체도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자본의 투자와 수익 창출은 강제하지 못하는 사회지만 그로 인해 지역민이 위축되거나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하니, 공동투자 방식을 도입하여 이익의 지역 환원을 공고히 하는 방안의 도입이 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현재 신안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태양열 발전의 이익 공유제와 같은 모델이 관광에 적용됨이 바람직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3년 전부터 ‘생활 관광’이란 분야의 공모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관광의 특정 지역 편중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음을 알 수 있는 정책이다.
지금 목포시를 비롯한 강릉, 부산, 전주, 안동시가 관광거점 도시로 지정되어 고군분투 중에 있다.
좀 더 지역과 상생하는 여행으로의 전환
서울, 제주로 집중되는 외국인 여행자를 더 많은 곳으로 분산하고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관광의 비중을 높이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사업이다. 거기에 비해 규모가 적은 지원금이지만 생활 관광과 같은 경우는 소규모 지역 단위의 지역성을 바탕으로 주민 주도의 관광을 실현해 일상이 여행의 매력물이 되고, 여행자와 현지민의 상생이 가능하게 한다는 계획이 생활 관광 지원 프로그램인 것이다.
우리 남도에서는 강진군이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을 중심으로 생활 관광을 진행 중에 있다. 농어촌 민박과 체험을 겸한 푸소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남 하동에서는 놀루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동에서의 삶이 여행 코스가 되고, 체험 프로그램이 되고, 공연이 되는 상품을 운영 중에 있다. 강원도 강릉의 명주동에서는 파랑달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시나미 명주나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해설사가 있고, 골목길은 개방되어 있으며, 영상투어와 다양한 체험이 경포대와 정동진으로만 향하던 발걸음을 붙들어 매고 있다.
여행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깊이 있고,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공감의 여행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메가 이벤트와 초대형 문화시설을 가지고 있는 광주의 경우는 어떨까?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미술전람회라는 이름으로 방문자들에게 예술의 향연에만 집중하고 하지 않는가?
아시아문화전당은 공적 기관이라고 광주와 남도의 볼거리와 자랑거리를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는가? 광주와 전남의 관광재단은 조화와 상생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이제 눈높이를 위드 코로나 시대가 부여한 개별화되며 지역화되고 있는 여행자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전고필 (여행전문기자)